칸 영화제(Festival de Cannes)
올해 제79회를 맞이하는 칸 영화제는 5월 12일부터 23일까지 프랑스 남부의 휴양지 칸의 팔레 데 페스티발(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ès)에서 열린다. 칸 영화제는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며, 세계 영화 산업과 예술영화의 흐름을 이끄는 영향력 있는 영화제로 평가받는다.
칸 영화제의 출발은 1938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벌어진 논란과 관련이 있다. 당시 유일한 국제 영화제였던 이탈리아의 베니스 영화제가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압력으로 나치 선전 영화에 최고상을 수여하자, 프랑스와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 국가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1939년 6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의 장을 만들고자 프랑스에서 영화제 신설을 공식 발표했고, 그해 9월 1일 첫 개최를 목표로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개막 당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영화제는 무산됐다. 이후 전쟁이 끝난 뒤 1946년 9월 20일, 마침내 제1회 칸 국제영화제가 공식 개막했다.
이후 칸 영화제는 빠르게 국제적 위상을 쌓아갔다. 1949년 팔레 크루아제트(Palais Croisette)가 문을 열었고, 1952년부터는 개최 시기가 현재와 같은 5월로 고정됐다. 또 1955년에 칸 영화제의 최고상인 ‘황금종려상(Palme d’Or)’이 처음으로 제정됐으며, 첫 수상작은 델버트 맨 감독의 ‘마티(Marty)’였다. 그 이전까지 최고상은 ‘그랑프리 뒤 페스티벌(Grand Prix du Festival International du Film)’이었다.
1959년에는 소설 ‘인간의 조건’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앙드레 말로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 하면서 누벨바그 감독들의 도전적인 작품들이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고, 영화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1968년에는 프랑스 사회를 뒤흔든 ‘68혁명’의 여파로 영화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1978년 질 자코브가 집행위원장에 취임한 이후, 칸 영화제는 현재와 같은 체계적인 구조를 갖추기 시작했다. 이 시기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과 신인 감독상을 의미하는 황금카메라상(Caméra d’Or)이 신설됐다. 1983년에는 현재 사용중인 일명 ‘벙커(Bunker)’라 불리는 팔레 데 페스티발 건물이 완공됐으며, 건물 앞 24개 계단의 레드카펫은 칸 영화제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1990년대부터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비서구권 영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며, 세계 영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무대로 발전했다.
2026년 제79회 칸 영화제에서는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에 위촉됐다. 박찬욱 감독은 2004년 영화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하는 등 칸 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이어왔다.
올해 개막작으로는 프랑스 감독 피에르 살바도리의 신작 ‘라 비너스 일렉트릭(La Vénus électrique)’이 선정됐다. 경쟁 부문에는 총 22편의 장편이 올랐으며, 이 가운데 여성 감독 작품이 다섯 편 포함됐다. 한국 영화로는 나홍진 감독의 ‘호프(HOPE)’가 2022년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이후 4년 만에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주요 내용 요약 및 참조
https://www.festival-cannes.com/qui-sommes-nous/histoire-du-festival/
작성: hysong16@mofa.go.kr
